Womens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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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화가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프로필 이미지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 헤더는 베르트 모리조의 젠느빌리에의 밀밭에서(Dans les blés à Gennevilliers) 자료 참고, 인용은 대부분 위키피디아
당시 스웨덴 상류층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 중 한 사람이었는데 인물의 외형뿐 아니라 표정과 성격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왕족과 문화계 인사들의 초상도 많이 제작했다. 뒤셀도르프 화파의 영향을 받았다. -신원 미상의 여인 -오스카라 프레드리카 레오폴디나 발스트룀 -예네 세데를룬드
스웨덴 최초로 해외 미술 유학 장학금을 받은 여성이 되었으며, 파리, 뮌헨, 로마 등에서 공부한 뒤 귀국하여 활발하게 활동했다. 1856년에는 왕립미술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되었다. 귀족보다 평범한 농민과 아이들의 일상을 즐겨 그렸으며 어린아이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졌다. -달라르나 농가의 일요일 저녁 -손자에게 바늘에 실 꿰는 법을 가르치는 할머니 -아침식사 -선술집에서
Amalia Lindegren 아말리아 린데그렌 1814~1891 스웨덴의 화가이자 예술가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이후 생부로 추정되는 귀족의 가족에게 입양되었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심리적으로 외롭고 불안한 유년기를 보냈는데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그녀가 즐겨 그린 슬픈 표정의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깊이 반영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소묘 실력을 보였으며, 화가 칼 구스타프 크바른스트룀의 도움으로 당시 여성에게 거의 허용되지 않았던 스웨덴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어린아이의 마지막 침상
Karin Larsson 카린 라르손 1859~1928 스웨덴의 예술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부유한 상인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미술적 재능을 보여 스톡홀름의 공예학교(현 콘스트팍)를 거쳐 스웨덴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공부했으며,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전문 미술교육을 받은 예술가였다. 이후 프랑스 아카데미 콜라로시에서 수학하며 프랑스의 예술가 공동체 그레쉬르루앙에서 활동했다.
대부분의 대표작이 수채화이며, 투명하고 맑은 색채를 활용하여 자연의 공기감과 빛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는데 극적인 사건보다 평화로운 자연과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여 조용하고 명상적인 정서를 전달한다. -수확 시간 -호밀이 익고 숲만큼 높이 자라면 나는 결혼하리
Regina Kylberg-Bobeck 레기나 퀼베리-보베크 1843~1913 스웨덴 화가 수채화 화가로 특히 야외 사생 기법을 활용한 풍경화와 일상 풍속화를 남긴 여성 화가이다. 19세기 후반 스웨덴 수채화의 발전에 기여한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된다. 결혼한 뒤에도 창작 활동을 계속했으며, 노르웨이를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 작품을 제작하였다. 1903년에는 스톡홀름에서 약 160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할 만큼 당대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냥도구 -여름 숲을 산책하는 여인 -로마 핀치오 산책로
사실적인 인물 표현, 탄탄한 소묘력과 안정된 구도, 절제된 색채가 특징이며 스승인 레옹 보나의 영향이 뚜렷하다. 농촌 여성, 소녀, 어린이, 일상생활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 많았으며 19세기 후반 스웨덴 여성 화가들의 국제적 진출을 이끈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우유 냄비를 든 프랑스 소녀 -백일몽 -아릴슬레예의 어획물 인양 -노르망디의 견진을 앞둔 소녀
Elisabeth Keyser 엘리사베트 카이세르 1851~1898 스웨덴 화가 스웨덴 왕립 미술원에서 수학하며 여성 화가 빌헬미나 칼손에게 지도를 받았다. 이후 약 10여 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레옹 보나의 화실에서 공부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파리 살롱에 여러 차례 작품을 출품하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었고 시카고 만국박람회 미술전에 참가하여 작품을 전시했다. 귀국 후에는 스톡홀름에서 자신의 회화학교를 운영하며 후배 여성 화가들을 양성했다. -자화상
핀란드 화가 베니 솔단의 초상화를 1887년 파리 살롱에 출품하여 선정되기도 했는데 이 초상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실주의 작품으로 여성 예술가가 손에 흙을 쥐고 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해 외설적이며 보헤미안적이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스웨덴의 진보적 미술가 단체인 Konstnärsförbundet(예술가협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여성 화가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도 기여했다. -베니 솔단-브로펠트의 초상화
파리 살롱에서 큰 호평을 받아 당시 유럽 최대 화상인 구필 화랑과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스웨덴의 해안, 강, 호수, 항구 풍경을 가장 즐겨 그렸는데 파리에서 익힌 외광 기법과 코로의 영향을 받아 자연광의 변화와 대기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현실적인 풍경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낭만적이고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녀는 여성 화가가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파리 살롱에서 성공을 거두고 유럽 미술 시장과 계약한 드문 스웨덴 여성 화가였다. -비스비의 꽃밭 -마르스트란드의 풍경
Anna Gardell-Ericson 안나 가르델에릭손 1853~1939 스웨덴 화가 처음에는 스위스로 유학을 갔고, 이후 스웨덴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화가 페르 다니엘 홀름에게 본격적으로 수학했다. 1875년 아카데미 전시에 데뷔했고 이듬해에는 필라델피아 백주년 박람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하며 일찍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알렉상드르 루이 를루아와 페르디낭 에일뷔트에게 배웠으며, 특히 카미유 코로의 수채화를 모사하며 풍경화 기법을 익혔다. -자수 놓는 여인과 접시꽃이 있는 거리 -물의 풍경 위로 떠오르는 해
대표적인 회화는 왕실의 일상과 가족의 생활을 담은 수채화이며 왕실 가족들의 일상, 무도회와 사교 모임, 실내 풍경 등을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묘사하여 19세기 스웨덴 왕실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시각 자료로 평가받는다. -말을 할 수 없니?
화려한 역사화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초상을 즐겨 그렸는데 여성을 이상화하거나 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일상을 담았다. 1910년 이후에는 에칭을 활발히 제작하면서 선의 섬세함과 명암 표현을 탐구했으며 회화에서 보여 준 부드러운 분위기를 판화에서도 유지한 것이 특징이다. -그레쉬르루앙의 오래된 다리 -카드 게임 -브르타뉴 해변의 파라솔
Emma Chadwick 엠마 채드윅 1855~1932 스웨덴 화가 왕립 스웨덴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당시 여성 화가들에게 중요한 교육기관이었던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장샤를 카쟁과 토니 로베르플뢰리에게 배웠다. 프랑스의 예술가 마을 그레쉬르루앙에서 미국 화가 프랜시스 브룩스 채드윅과 만나 결혼한 뒤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여동생 -휴식 -거울 속 자화상 -남편 프랜시스 채드윅의 초상
Anna Cassel 안나 카셀 1860~1937 스웨덴의 화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원래 다음 지역을 중심으로 한 풍경화를 많이 그렸으나 이후 영성주의에 기반한 추상회화에 집중했다. 공예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힐마 아프 클린트를 처음 만났고 이후 스웨덴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함께 수학했다. 아프 클린트와 함께 여성 영성 예술가 모임 '데 펨(De Fem, 다섯 사람)'을 결성해 신지학(Theosophy), 심령주의, 자동기술(automatic drawing)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Sofie Ribbing 소피 리빙 1835~1894 스웨덴 화가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으며 스웨덴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뒤 독일의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로 유학하여 당대 유명 화가인 카를 페르디난트 존에게 사사했다. 이후 파리와 브뤼셀에서도 수학하며 실력을 쌓았고 1860년대에는 코펜하겐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했으며 브뤼셀 살롱에 처음 출품한 뒤 스톡홀름 산업박람회에서도 성공을 거두었고, 런던·헤이그·로마 등 유럽 여러 도시에서 전시 활동을 이어갔다. -자화상 -그림 그리는 소년들 -이탈리아 소녀 -자화상
1872년에는 스웨덴 왕립미술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되었다. 초기에는 실내 장면, 역사적 의상을 입은 인물, 문학적·역사적 분위기의 장면을 많이 그렸는데 우아한 의상과 세밀한 묘사가 특징이다. 말년에는 색을 작은 붓질로 나누어 배치하는 분할주의(Divisionism) 경향을 일부 수용해서 완전한 인상주의 화가는 아니지만 학원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현대적인 색채 실험을 시도한 과도기적 작가로 평가받는다. -신혼부부의 작별 -베네치아 운하에서
Agnes Börjesson 아그네스 뵈리에손 1827~1900 스웨덴 화가 여성에게 미술 교육의 문이 거의 열려 있지 않던 시기에 스웨덴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한 최초의 여성 학생들 중 한 명이었으며, 이후 덴마크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수학했다. 특히 뒤셀도르프 화파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 파리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1865년 이후에는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로마, 베네치아, 시칠리아, 리구리아 등지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으며 로마에서는 친구이자 화가인 소피 리빙과 한동안 함께 살았다. -우물가의 여인
1889년 작품 <Music>이 파리 살롱에서 명예언급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스웨덴으로 돌아와 초상화가로 활발히 활동했으며,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1900년 전후부터는 점차 그림을 그리지 않고 상속받은 재산으로 스톡홀름의 공공기관과 학교에 예술 작품을 기증하는 재단을 설립하여 도시 미화와 예술 보급에 큰 역할을 하며 사회공헌 활동에 힘썼다. 주로 초상화를 그렸는데 단순히 외모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려 했다. -요양기 -막달레나
Eva Bonnier 에바 보니에르 1857~1909 스웨덴의 화가 스웨덴의 대표적인 출판 가문인 보니에르 가문 출신으로 스톡홀름 왕립미술아카데미 여성부에서 공부했으며 화가 아우구스트 말름스트룀에게 사사했다. 이후 친구이자 동료 화가였던 한나 파울리와 함께 파리로 건너가 약 6년 동안 활동했다. 아카데미 콜라로시에서 수학하며 당시 프랑스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접했다. -자화상 -파리 스튜디오 내부 -푸른 빛의 반영 -재봉사들
1884년에는 파리 살롱전에 작품이 입선하며 주목을 받았고, 귀국 후에는 스웨덴 화가 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했고 미술 교사로도 일했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크게 꽃 정물화와 풍경화로 나눌 수 있다. 파리 유학 시기에는 꽃을 주제로 한 유화와 정물화를 많이 제작했는데 세밀한 묘사와 밝고 우아한 색채가 특징이며, 프랑스 아카데미즘과 살롱 회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귀국 이후에는 풍경화에 더욱 집중했다. 특히 스웨덴의 자연 풍경, 자작나무 숲, 초원, 호수 주변 풍경 등을 즐겨 그렸으며 수채화와 유화를 모두 사용했다.
Anna Billing 안나 빌링 1849~1927 스웨덴 화가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가족과 함께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지에서 생활하며 교육을 받았고,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음악을 공부했지만 결국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요한 구스타프 쾰러, 케르스틴 카르동 등에게 배웠으며, 파리에서는 꽃 정물화로 유명한 조르주 잔냉에게 사사했다.
1880년대 코펜하겐으로 돌아온 뒤에는 초상화가로 큰 명성을 얻었고 이후 덴마크 왕립미술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교수직 보유자가 되었으며 의장작을 맡은 최초의 여성이었다. 여성 미술 교육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북유럽 사실주의 계열 화가로 분류되며 특히 인물의 외형보다도 심리적 분위기와 내면의 정서를 포착하는 데 뛰어났다. 그녀의 초상화는 화려한 연출보다는 조용하고 사적인 분위기를 지니며, 인물의 시선·손동작·침묵 같은 요소를 통해 감정을 암시한다. -요안나 베아크의 초상 -바느질하는 여자 -성경을 묵상하며
Bertha Wegmann 베르타 베그만 1847~1926 스위스 혈통의 덴마크 초상화가 19세에 본격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독일 뮌헨으로 건너가 역사화와 장르화를 공부했으나 아카데믹한 화풍보다 실제 인물을 직접 관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스웨덴 화가 예안나 바우크와 가까운 동료이자 평생의 동반자로 알려져 있으며, 함께 이탈리아와 파리를 여행하며 작업했다. 파리 살롱전에 출품해 명예 언급을 받기도 했다. -화가의 작업실에서 차를 마시는 두 친구 -북셸란 해안 풍경
베를린의 여성 예술가 협회에서 야간 회화 수업을 가르쳤으며, 훗날 독일 초기 표현주의의 중요한 화가가 되는 파울라 모더존-베커가 그녀를 가장 존경한 스승 중 한 명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자연을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바우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베르타 베그만과 서로를 그린 초상화 연작 때문인데 이 작품들은 단순한 인물화가 아니라,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여성 화가'를 진지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베르타 베그만
Jeanna Bauck 예안나 바우크 1840~1926 스웨덴계 독일 화가 비교적 지적인 분위기의 가정에서 성장해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당시 여성에게 미술 교육 기회가 제한적이었는데도 드레스덴, 뒤셀도르프, 뮌헨 등에서 전문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 특징적이며 특히 뮌헨에서 덴마크 화가 베르타 베그만을 만나 평생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로 지냈다. 1880년대에는 파리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했고 이후 다시 독일로 돌아와 여성 화가들을 위한 교육 활동도 했다.
Ester Almqvist 에스테르 알름크비스트 1869~1934 스웨덴 예술가 스웨덴에서 표현주의 회화의 선구자였다. 선천적으로 척추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 평생 동안 이동에 제약을 받았지만 가사 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을 공부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스톡홀름 공예학교를 졸업한 뒤 화가 구스타프 세데르스트륌에게 사사했고, 이후 예테보리의 발란드 미술학교와 스톡홀름 예술가연맹 학교에서 수학했다. -제재소 -아네뷔 역의 제재소 -만남 -고지식한 목사의 딸
Sofia Adlersparre 소피아 아들레르스파레 1808년 3월 6일 ~ 1862 스웨덴 화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 재능을 보였으며 우연히 집 근처에 머물게 된 화가 C. F. 페데르센에게 기초를 배웠고 당시 스웨덴의 주요 화가였던 요한 구스타프 산드베리, 올로프 요한 쇠데르마르크 등에게 교육받았다. 1836년 스웨덴 왕세자비가 그의 작품을 주문하면서 궁정 및 상류층 사회에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수학했다. -조세핀 여왕 -조세핀 여왕 -마리 디에츠 -자화상
단순히 '취미 화가'가 아니라 전문 직업 화가로 인정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작품에서도 단순 장식성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성과 국제 살롱 스타일을 보여주려 했다. 대부분은 꽃과 정물이지만, 대표작 중 하나인 '꽃 가판대'에서는 꽃을 파는 여성의 쓸쓸한 표정을 통해 여성 노동과 생계 문제를 암시하기도 했다. -꽃 가판대
María Luisa de la Riva y Callol-Muñoz 마리아 루이사 데 라 리바 이 카욜무뇨스 1865~1926 스페인 화가 그녀는 꽃, 과일, 화병 등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한 정물화로 유명했는데 장미, 포도, 석류, 제라늄 같은 식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며, 질감과 빛의 묘사가 뛰어났다. 파리로 이주하여 활동 범위를 국제적으로 넓혔으며 그 영향으로 스페인 전통 정물화보다 색감이 밝고 화려하며, 장식적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특히 꽃잎과 유리 화병의 반사광 표현이 섬세했다. -꽃과 과일 -꽃병 -정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