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srcordis
나는 어쩌다 이렇게 먼 곳까지 흘러왔을까. 댓글, 멘션 반말로 하지 않기 운동본부 본부장. 맞팔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할게요. 그래도 제가 궁금하시면 저를 외면하세요. 그렇다면 전 오타대마왕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요한 11,21-22) #dailyreading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섬겼던 마르타는 오빠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 당연하고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죽더라도 사는 것을 이야기하신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마태 13,37-39) #dailyreading 가라지 하나 없는 채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가 뿌려지고 자라는 세상에서 내 삶을 완성해가는 것.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마태 13,31) #dailyreading 겨자씨 같고 누룩 같아, 어떤 날은 잘 보이지 않고 찾기도 어렵다. 그러다보니 보이지 않아 없다고 하고, 어려우니 찾기를 그만두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겨자씨에만 머물지 않고, 밀가루와 함께 부풀어 오른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마태 13,44) #dailyreading 하늘 나라를 아는 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하늘 나라를 사는 것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당장 내 것이 되는 일도 아니고, 기쁨을 간직한 채 가진 것을 팔아 그 밭을 사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쩌면 내 것이 없어지는 만큼...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20,26) #dailyreading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 나 자신을 키운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마태 13,16) #dailyreading 이런 눈, 이런 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보이고 한 걸음 물러나야 들린다. 내가 안다 싶으면 한없이 가볍게 듣고 멋대로 보는 법. 기도 한마디에 어떤 절망이 담겼는지, 묵상 한 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스며있는지 모르고 쉽게 판단하지.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요한 20,1) #dailyreading 오랫동안 과소평가 되어온 마리아 막달레나 성인의 축일.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 누구보다 먼저 무덤을 찾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내가 알아보지 못해도 주님이 먼저 이름을 불러주시니...(첫번째 사진은 동등한 제자처럼 그려진 그림이라서 마음에 들고, 두번째는 귀여워서 ㅎ)
매스커레이드 이브. 오랜 만에 다시 시작한 히가시노 게이고. 매스커레이드 시리즈의 프리퀄이랄까. 본편은 호텔부터라네. 이브는 시리즈를 뒷받침하면서 주인공들의 과거를 다루며 그들이 어떻게 스치고 지나갔는지를 보여준다. 대단한 것이, 그걸 보여주면서 각 사람의 소개를 하나의 추리소설로 썼다는 것. ‘가면’을 쓸 수 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가 좀 씁쓸했다. 호텔리어 나오미의 영리하고도 인간미 있는 눈썰미와 직업에 대한 소신이 매력적이면서도, 나는 못하겠네 했다. 올 여름, 심심풀이 추리소설 시작이다.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마태 12,49) #dailyreading 이들이… 라고 하시는데 문득 뭘 그리 가르고 고르냐 하시는 것 같았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이 내 어머니고 형제들이야, 너처럼!!! 그러니 그만 골라내고 경계를 허물어!!!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마태 12,41) #dailyreading 지금껏 어떻게 살았느냐는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가느냐보다 더 중요할까.
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하루 왼종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 기분이다. 다만 앞을 보고 앉아 다가오는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뒤돌아 앉아 내가 달려온 길을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바라보며 떠나는 여행. 기차의 속도는 어쩔 수 없지만 내 시선이 머무는 시간은 어느 정도 나의 것이지…하면서 말이다. 은희경 작가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곧잘 ‘나 같은 사람’을 찾아내곤 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손절사회.이승연 지음. 어크로스. 늘 궁금했다. 손절이 최선일까. 블락이 최선일까. 최선일 때도 있지만 너무 쉬운 건 아닐까. 혹은 너무 섣불리 권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시작했는데, 제목보다 더 큰 책이었다. 치료요법 문화에 대한 분석이 특히 흥미로웠고, 이 책의 마무리가 '경청'으로 끝나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책을 읽다보면 나도 이제 어엿한 늙은이인가 싶기도 한데(주제 선정이나 감각 정도가 내게는, 돋보기를 쓰고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게 했기에), 홀로 서서 분투하고 있는 많은 (여성) 젊은 분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탁월한 피해자 곽아람 글. 생각의 힘. 7년간 스토킹 피해를 겪고 가해자를 수차례 고소하며(그보다 더 수차례 범죄 피해를 입으며) 써내려간 글, 난중일기 (亂中日記) . 피해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국가로부터는 물론이고 당연히 보호해줄 것이라 믿었던 경찰, 검찰, 변호사, 회사, 법 등등으로부터 철저하다 싶을 만큼 보호받지 못했던 뼈아픈 현실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주. 읽을 때는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다 읽고 나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세상이 어찌 이렇나 한탄만 나온다.
정보라. <붉은칼>. 래빗홀. 정보라 작가다운, 이게 그녀의 현재 삶인가 싶기도 했던 소설.학생들도 많이 가르치시고, 책도 많이 쓰시고,(그럴 일이 없는 세상이 와야겠지만) 위로가 되고 각성도 되는 목소리도 많이 내어주시면 좋겠다. "살아서, 같이 여기서 나가자"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마태 13,27-28) #dailyreading 오늘은 복음을 읽자마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하는 집주인의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됐다.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에 뒤이어 '어쩔 수 없었겠구나.'하는 말도 연달아 소리 없이 들렸다. 아니, 알아 들었다, 이분은 내탓이 아니라는 걸 아시는구나.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마태 12,20) #dailyreading 이미 부러졌어도 꺾지 않고, 이미 연기가 나는데도 끄지 않는다. 올바름.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태 12,7) #dailyreading 원인을 찾는 일과 희생 제물을 만드는 일은 다르다. 세상사도, 내 삶도. 자신을 희생제물 삼는 일을 스스로 하지 않도록, 자신에게도 자비의 마음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29) #dailyreading 온유와 겸손 안에서 배울 것.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마태 11,25) #dailyreading 하느님이 감추시고 또 드러내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때의 내 모습. 그 모습이 중요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태 11,20) #dailyreading 기적이 은총인 줄 모르고 능력인 줄 알았던… 오늘도 감기환자. 뒤늦게 코로나일까 하는 중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 10,34) #dailyreading 뭐라도 할 수 있도록. 감기가 너무 지독해서 오늘은 정말 묵상을 못하겠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마태 13,3) #dailyreading 돌밭에도 길가에도 씨를 뿌리는 마음이 젊었을 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종종 씨의 생명력을 믿기에 가능한 파종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다. 말라가던 찔레도 며칠 장마비에 다시 생생해졌다.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마태 10,13) #dailyreading 상대를 가려가며 선행을 하다보면 결국 선행을 멈출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내 입맛에 쏙 맞는 상대는 없기 때문. 그러니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일을 하자, 내가 한 선행은 어떻게든 세상의 한 조각 빛이 되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마태 10,1) #dailyreading 예수님은 권한을 독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9,36) #dailyreading 바리사이들은 치유 기적을 권력으로 보았기에 베엘제불의 힘이라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복종시키거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고쳐주신 것이 아니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요 사랑이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마태 9,20-21) #dailyreading 누군가는 말도 안되는 맹신이라 하겠고, 누군가는 간절히 뻗은 여인의 손 끝을 보겠고. 우리 각자는 서로 달라도 예수님이 보고 드는 것은 분명하지. 하나 뿐이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2) #dailyreading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은, 끝까지 견디는 삶은, 억울한 일을 계속 당하라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일이 일어났음을 받아들이고 다음 걸음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너무 억울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삶을 완성해보라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요한 20,25) #dailyreading 토마스의 이 말을 읽는데 '버티다'라는 단어가 자꾸만 생각났다. 지금 나도 어지간히 버티고 있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마태 9,4) #dailyreading 자신의 판단만 믿고 서둘러 확정지은 후 서슴없이 결론을 냈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누군가의 확신에 찬 생각에 던지신 예수님의 질문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마태 8,29) #dailyreading 무덤에서 무리지어 살며 사납게 굴어 사람들을 몰아내는 사람들이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다. 제 잘못은 모르고 자신을 괴롭힌다며 오히려 남탓을 한다.